4식 전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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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4식 전투기는 1942년 일본 육군 항공대의 요구에 따라 개발된 나카지마(Nakajima)의 단좌 전투기이다. Ki-43 하야부사를 대체하기 위해 설계되었으며, 1943년 3월 첫 비행을 했다. 하야테(4식 전투기의 별칭)는 강력한 Ha-45 호마레 엔진을 탑재하여 연합군 전투기에 필적하는 성능을 목표로 했으나, 엔진의 신뢰성 문제와 원자재 부족으로 인해 성능이 저하되는 경우가 있었다. 4식 전투기는 1944년 레이테 만 전투에 처음 투입되었으며, 태평양 전쟁 말기까지 일본군 주력 전투기로 사용되었다. 다양한 파생형이 존재하며, 4식 전투기 1형 갑이 가장 널리 생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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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식 전투기 | |
---|---|
개요 | |
종류 | 전투기 |
제작사 | 나카지마 비행기 |
운용 국가 | 일본 육군 만주국 중화민국 공군 중국 인민해방군 공군 |
설계자 | 고야마 데이 |
별칭 | 육군 4식 전투기 하야테 |
개발 | |
첫 비행 | 1943년 2월 |
도입 | 1944년 6월 |
퇴역 | 1945년 9월 |
생산 기간 | 1944년 ~ 1945년 |
생산 대수 | 3,514대 |
파생형 | |
파생형 | 나카지마 Ki-116 |
명칭 | |
로마자 표기 | Nakajima Ki-84 Yonshiki-sentōki "Hayate" |
의미 | 나카지마 Ki-84 4식 전투기 "하야테(질풍)" |
2. 개발
1942년 초, Ki-43 하야부사를 대체하기 위한 일본 육군 항공대의 요구 사항에 맞춰 Ki-84의 설계가 시작되었다. 이 요구 사항은 Ki-43의 기동성과 최고의 서양 전투기에 필적하는 성능, 그리고 강력한 화력을 결합해야 했다. Ki-84는 1943년 3월에 첫 비행을 시작했고, 그 다음 달에 나카지마의 오타 공장에서 인도가 시작되었다. 설계 자체는 견고했지만 숙련된 조종사, 고옥탄가 항공유와 원자재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증가하고, 비숙련공의 제조로 인해 종종 전투기가 최대 잠재력에 도달하지 못했다.[5][6][7]
Ki-84의 설계는 Ki-43 하야부사의 일반적인 불만 사항이었던 불충분한 화력, 열악한 방어 철판, 그리고 상승 속도의 부족을 해결했다. Ki-84는 직물로 덮인 제어 표면을 제외하고 모든 금속 구조의 캔틸레버의 낮은 날개 단일체형 비행기였다. 무장은 두 개의 동체 장착, 동기화된 12.7mm 기관총과 두 개의 날개 장착 20mm 기관포로 구성되어 Ki-43 하야부사에 사용되었던 두 개의 12.7mm 기관총보다 상당히 향상되었다. 방어 장갑은 Ki-84 조종사들에게 Ki-43의 봉인되지 않은 날개 탱크와 가벼운 합금 기체보다 더 나은 보호를 제공했다. Ki-84는 65mm 갑옷 유리 캐노피, 13mm 머리와 등 갑옷, 그리고 여러 개의 격벽을 동체에 사용하여 메탄올-물 탱크와 중앙에 위치한 연료 탱크를 모두 보호했다.[8]
1941년에 처음 군사용으로 채택된 나카지마 사의 35.8리터 공랭식 18기통 방사형 엔진은 하야테에게 빠른 속도와 뛰어난 전투력을 선사했다. 1943년 초여름 타치카와에서 테스트를 진행한 후나바시 중위는 두 번째 프로토타입에서 최대 공기 속도 624km/h를 기록했다. 1946년 미국 기술 정보국은 호마레 45, 모델 21 엔진을 벤치 테스트하고 96 옥탄 AvGas와 메탄올 분사를 사용하여 엔진의 최대 출력을 검증했다.[9]
기본 설계는 정통적인 구성을 따르면서[15], 속도, 무장, 방탄, 항속 거리, 운동성, 조종성을 균형 있게 갖추었으며, 설계 단계에서 생산성도 고려되었다. 97식 전투기(Ki-27), 1식 전투기 "하야부사"(Ki-43), 2식 전투기 (2식 단좌 전투기) "쇼키"(Ki-44)에 이어, 코야마 테이 기술 주임을 설계 주무자로 하는 나카지마제 전투기의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는 기체이다.
특히 최고 속도는 대전 중에 실용화된 일본제 전투기 중에서 가장 빨랐으며, Ki-84-I乙 시제기가 시험 비행 시 고도 6,000 m에서 660 km/h를 기록했다. 또한, 전후 미국군에 의한 테스트에서는, 전시 긴급 출력 시 고도에서 687 km/h를 기록했다(100옥탄/140 그레이드의 가솔린과 미국제 점화 플러그를 사용하고, 무장을 제거한 중량 상태).[15]
4식 중폭격기 "히류"(Ki-67)와 함께 중점 생산 기종으로 지정되어, 총 생산 대수는 기준 구멍 방식의 채용 등 양산에도 배려한 설계로, 1944년 중반이라는 태평양 전쟁 후기 등장 기체임에도 불구하고, 일본군 전투기로는 영식 함상 전투기, 1식전에 이어 약 3,500대에 달했다.[15]
제국 육군에서는 전황을 뒤집을 "대동아 결전기"로서 크게 기대했으며,[15] 대전 후기의 주력 전투기로 다수 기체가 각 비행 전대와 같은 일선 실전 부대에 배치되었다. 당시 주요 전선 (중국 전선, 필리핀 전선, 버마 전선) 및 일본 본토 방공전에 종군했으며, 대전한 미군으로부터도 "일본 최우수 전투기"로 평가받은 기체였지만, 정비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탑재된 신형 엔진 하45(호마레)의 불량이나, 윤활유·가솔린(옥탄가)의 품질 저하, 점화 플러그나 코드 등의 전기 계통의 불량·부족, 전선에서의 정비력 저하 등으로 인해 전체적으로 가동률이 낮아, 스펙대로의 성능을 내기가 어려웠다.[15]
1941년 12월 29일, 키44(후의 2식전)의 발전형으로서 나카지마에 최고 속도 680 km/h 이상, 20mm 기관포 2문, 12.7mm 기관포 2문 장비, 제공, 방공, 습격 등 폭넓은 임무에 사용 가능한 고성능 만능 전투기의 개발 지시가 내려졌다. 당초에는 키44의 2,000 마력급 엔진 하145 탑재형인 키44-III을 베이스로 하여 날개 면적을 늘려 착륙을 용이하게 하고, 연료 탑재량을 늘려 항속 거리를 늘리고, 강력한 엔진으로 속도 및 상승력의 향상을 노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키84는 처음부터 광대한 태평양 전역에서 운용될 것이 결정되었기 때문에, 항속 거리의 신장이 요구되었고, 연료 탑재량의 증가와 함께 날개 면 하중을 계획 값 155 kg/m2에 맞추기 위해 날개 면적의 확대를 피할 수 없게 되었으며, 2,700 kg 정도로 예상되었던 전비 중량은 3,000 kg을 훨씬 넘는 전망이 되었다. 이에 대응하여 날개 면적을 늘리면 다시 중량이 증가하는 악순환에 빠졌고, 특히 주익의 설계는 난항을 겪었다. 게다가, 전선에서의 요구로 방탄, 방화 장비, 무장의 강화 등도 필수적이었고, 이것 또한 중량이 증가하는 한 요인이 되었다.
결국 주익 면적은 계획 값 17.4 m2에서 최종적으로 21 m2가 되었고, 예정했던 전비 중량이 실기의 자중이 될 정도였지만, 우여곡절을 거쳐 마침내 키84의 설계가 마무리되어, 1943년 3월에 시제 1호기가 완성, 4월에 첫 비행을 했다. 육군 측에서 처음으로 키84를 조종한 육군 항공 심사부 비행 실험부 전투대 키84 심사 주임(테스트 파일럿) 이와하시 죠조 소좌는 "이거 괜찮은데"라고 웃으며 말했고, 설계 주무자 코야마 이하 개발 스태프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는 일화가 있다. 시험 비행은 1~3호기까지는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어 좋은 성적을 거두었지만, 양산형의 하45를 탑재한 4~7호기에서는 엔진과 프로펠러의 트러블에 시달렸고, 특히 엔진에 관해서는 시험 기간 중 끝까지 해결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문제를 안고 있었지만, 하루라도 빨리 실용화하고 생산 체제를 정비할 목적, 그리고 심사부의 테스트 파일럿인 아라마키 요시쓰구 소좌의 진언도 있어, 증가 시제기는 10기 이내라는 종전의 방침을 전환하여 심사와 시제를 병행하여 진행한 결과, 제식 전에 100기를 넘는 대량의 증가 시제기가 생산되었다.[17] 1944년 4월에 키84는 '''4식 전투기'''로 제식 채용되어, 순차적으로 나카지마 오타 공장, 우쓰노미야 공장에서 양산이 시작되었다.
나카지마에서는 1942년부터 키84보다 항속 시간을 연장하고, 대형 배기 터빈으로 고고도 성능을 향상시킨 키87을 개발하고 있었지만, 트러블 및 키84의 개발을 우선한 것으로 인해 계획은 늦어져 종전에 맞춰지지 못했다.
1944년 10월, 4식 전투기는 도코로자와 육군 비행장에서 각 보도 관계자에게 처음 공개되었다. 공개된 기체는 비행 제73전대에 소속되었고,[18] 무도장 은색 바탕에 부대 마크나 기체 번호 등을 그린 실전기였으며, 이 때 사진 촬영된 기체는 초기 양산형인 제491호기였다.
또한 애칭은 "할", "종규", "도룡", "비연"과 같은 각 신예 전투기에 이은 것으로 일본 전국에서 모집되었다. 그 중에서도 많은 표수를 차지하고 육군성 선정 결과 "'''질풍'''"('''하야테''")이라는 이름이 선택되었다. 1945년 4월 11일자 각 신문에서 "''수훈을 세우고 있는 육군 최신예 전투기''", "'''''질풍'''과 같이 적을 덮치는 우리 전투기의 늠름한 모습을 칭찬하기에 어울리는 이름''"이라는 찬사가 섞여 실전 부대 소속 기체의 사진과 함께 발표되었다.[19]
4식 전투기 "질풍"은 "제국 육군의 신예 전투기"로서 국민들에게 알려진 존재였으며, 1식 전 "할"의 선전에 대표되는 홍보 활동에 대한 육군의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질풍" 또한 각 미디어에 등장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1945년 7월 1일 공개된 일본 뉴스 제254호에서는 '''육지의 맹수 "질풍" 전투기대 신주를 침범하는 추한 날개에 도전하는 우리의 결전기대'''라는 제목으로, 군가 '질풍 전투대의 노래'를 배경 음악으로, 기체 번호를 화려한 폰트로 크게 수직 미익에 그린 아케노 교도 비행 사단교도 비행대 소속의 4식 전투기 수십 기의 영상(지상 주기 시나 조종석, 4기 편대로 구성된 소대 이륙 및 저공 비행 장면)이 사용되었다. 또한, 이 일본 뉴스 제254호 '정공 부대'호는 해군의 뇌전과 앞뒤로 세트로 되어 있으며, 또한 대전 말기 공개를 위해 제2차 세계 대전 마지막 일본 뉴스이다.[20]
2. 1. 엔진 문제와 조종 특성
疾風일본어는 1941년에 처음 군사용으로 채택된 나카지마 사의 35.8L 공랭식 18기통 방사형 엔진인 Ha-45 호마레("칭찬" 또는 "명예") 엔진을 장착하여 빠른 속도와 뛰어난 전투력을 얻었다. 많은 일본 항공기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나카지마 호마레 엔진에서 파생된 疾風일본어는 기화기 모델 21과 연료 분사 모델 23을 포함한 여러 버전의 호마레 엔진을 사용했다. 대부분의 호마레 엔진은 수분 분사를 사용하여 과급기가 Ki-84가 이륙 시 1491kW의 정격 출력을 내도록 도왔다. 이러한 조합은 이론적으로 연합군 최고 전투기와 대략적으로 경쟁할 수 있는 상승 속도와 최고 속도를 제공했다.[9]하지만 육군의 3식 전투기 히엔과 같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1800마력급의 Ha-45 공랭식 성형엔진의 문제점 때문이었다. 이 엔진은 신뢰성이 매우 떨어졌으며 출력이 들쑥날쑥해서 조종사들로부터 '예측불허의 변덕쟁이'라는 악평까지 받는 물건이었다. 출력은 강력했지만 연료 공급계통이 계속 문제를 일으켜 엔진이 출력저하를 일으키는 것은 그렇다하더라도 비행중에 갑자기 정지해버리는 치명적인 경우까지 속출했다.
한 일본군 조종사는 이런 말을 하기까지 했다.
- 1945년에 생산된 하야테의 조종석에는 절대 타지 마라. 최근에 생산된 녀석들일수록 불량품이 더 많아서 언제 추락할지 모르는 시한폭탄같은 것들이다. 차라리 1944년에 생산된 초기형이 더 믿을만하다.
오죽하면 당시 정비병들 수기에는 보급받은 조악한 수준의 하야테 여러 대를 분해해서 그나마 멀쩡한 하야테 한 대를 만들거나 정비하는 게 일상이라는 언급도 있다.
복잡한 Ha-45-21 기화기 엔진은 Ki-43의 27.9L 14기통 나카지마 사카에 방사형 엔진보다 직경이 3cm 더 큰 소형 설계였으며, 제작 및 유지 관리에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했고 연합군이 일본 본토로 진격하면서 형식의 설계된 성능을 유지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졌다. 신뢰성 문제를 악화시키기 위해 연합군의 잠수함 봉쇄로 인해 착륙 장치와 같은 중요한 부품의 배송이 불가능했다. 많은 착륙 장치 장치는 종전 시기 일본 강철의 열악한 품질로 인해 손상되었다. 그 결과, 많은 '하야테'가 착륙 시 스트럿 붕괴를 겪었다.
탑재 엔진인 하45는 하25/하115(해군명 "사카에")의 18기통 버전이라고 할 수 있으며, 당시 구미에 뒤쳐져 있던 엔진 기술 격차를 메우기 위해 하25와 거의 같은 전면 면적으로 약 2배의 출력을 목표로 한 신세대 엔진이었다. 다소 무리한 소형화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엔진 각부의 여유가 적어 "예술품"이라고 평가될 정도로 섬세한 부분이 있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대전 말기 양산 시에는 초기 고장의 빈발 외에, 1943년 11월에 합리적인 병기의 대량 생산을 실현할 목적으로 설립된 군수성이 나카지마 비행기의 타마 제작소와 무사시노 제작소(전자는 해군용 발동기, 후자는 육군용 발동기를 각각 생산하고 있었다)를 통합했지만, 이미 이 두 공장은 육해군용으로 별도로 생산을 하는 대공장으로 기능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통합은 생산 관리 능력의 한계를 넘어섰다. 결과적으로 완제품의 검사 체제가 소홀해지고, 제조 시의 불량도 발견되지 않은 채 문제를 안고 있는 발동기가 육해군에 영수되어 가는 사태가 발생하여, 액면가의 성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 다발했다.[27]
하45는 고품질의 100 옥탄 가솔린 사용을 전제로 설계되었지만, 대외 정세의 악화에 따라 입수가 곤란해졌기 때문에, 91 옥탄 가솔린에 수 메탄올 분사를 실시하여 100 옥탄 가솔린과 동일한 효과를 얻을 수 있도록 설계 변경되었다. 반면 이 수 메탄올 분사의 조정이 어려워, 하45의 불량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일식전 삼형이나 라이덴에서도 동일한 불량이 발생하고 있다). "육군은 87 옥탄 가솔린이 고작이고 실태는 그 이하"라는 설도 있지만, 본토뿐만 아니라 남방에 전개하고 있던 실전 부대의 기록에는 최소한의 수요를 충족하는 정도의 91 옥탄 가솔린은 안정적으로 공급되었음이 기재되어 있으며, 87 옥탄 가솔린으로 비행했다는 증언도 "후방에서 실용기를 전용한 연습기에 사용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았다"나 "실전에서도 사용할 수 없는지 시험적으로 넣고 비행해 보았다"라는 기술이 대부분이다. 즉, 육해군을 막론하고, 연습기를 제외한 제일선 실용기에는 91 옥탄 가솔린이 사용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행 제47전대에서 정비대장을 맡았던 가리야 마사유키 대위는 저서에서 "이것(가솔린) 자신도 과연 충분히 그 성능을 발휘하고 있었는지 의심스럽다"고 언급하고 있으며, "연료의 성능이 액면 미달"이었을 가능성도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해군의 호마레 탑재기인 은하를 운용한 전 공격 제405비행대장인 스즈키 료고로 대위도 "당시 A91G(항공 91 휘발유)는 A87G(항공 87 휘발유) 정도, 또한 A87G는 A85G(항공 85 휘발유) 정도의 질로 저하"라고 연료에 대해 실정을 증언하고 있다.[28]
대출력의 하45에 대응하기 위해 프로펠러도 1식 전투기나 영식 함상 전투기에 사용되던 유나이티드 테크놀로지스(해밀턴 스탠다드)제 유압식 가변 3엽(해군용은 스미토모 금속, 육군용은 야마하(일본 악기 제조)가 생산)에서, 더 피치 변경 각도가 큰 프랑스의 전동 가변 4엽(닛산 차체(일본 국제 항공 공업)가 라이선스 생산권을 획득)의 채용을 검토했지만, 처음에는 피치 변동 속도가 느려 전투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여겨졌다. 일본 국제 항공 공업에서는 변동 속도를 초당 1.2도에서 13.2도로 한 개량형 "페32"의 개발에 성공하여, 전투기에도 탑재 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전동 가변 기구의 경험이 적어, 변절 속도가 너무 빨라 헌팅이나 엔진의 과회전과 같은 문제가 발생하여, 최종적으로는 전동기의 전력을 반감하여 동작 속도를 낮춤(초당 13.2도에서 6.6도)으로써 일단락 해결을 보았지만, 현장의 정비원도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많아 불안정한 부품 정밀도와 맞물려 고장이 잇따라, 엔진과 함께 4식 전투기가 불량해지는 원흉이 되었다. 일본 악기 제조에서는 고장의 원인이 되었던 전동 부분을, 자사가 라이선스를 생산권을 획득한 융커스사의 유압식 가변 프로펠러의 기구로 대체한 "페33"을 시작하여 4식 중폭격기에 탑재할 예정이었지만 종전에는 맞추지 못했다.
4식 전투기에 채용된 프로펠러 블레이드는 직경 3.05m의 4엽으로, 여러 국가의 2,000마력 클래스 전투기도 3.6m~4m가 중심인 것과 비교하면 작다.
3. 실전 투입 및 평가
1944년 말 레이테만 전투에서 처음으로 중요한 작전을 수행한 이후, 태평양 전쟁이 끝날 때까지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는 곳이면 어디든 4식 전투기(Ki-84)가 투입되었다.[8] 비행 제22전대는 생산된 하야테로 재무장했다. 고고도 성능은 부족했지만, 중고도와 저고도에서 좋은 성능을 발휘했다. 미 육군 항공대 제14 공군을 상대로 전투를 벌이면서, 이 기종은 곧 강력한 전투기로 명성을 얻었다. 전투 폭격기 모델 또한 실전에 투입되었다. 1945년 4월 15일, 11대의 하야테가 오키나와에 있는 미군 비행장을 공격하여 지상에 있던 많은 항공기를 파괴했다.
전쟁 마지막 해에 4식 전투기, Ki-100(기본적으로 직렬 엔진을 장착한 가와사키 Ki-61의 성형 엔진 버전) 그리고 가와니시의 N1K2-J는 신형 연합군 전투기에 맞서 싸우기에 가장 적합한 세 종류의 일본 전투기였다.
1944년 10월, 4식 전투기는 도코로자와 육군 비행장에서 각 보도 관계자에게 처음 공개되었다. 공개된 기체는 비행 제73전대에 소속되었고,[18] 무도장 은색 바탕에 부대 마크나 기체 번호 등을 그린 실전기였으며, 이때 사진 촬영된 기체(오른쪽 사진)는 초기 양산형인 제491호기였다.
1945년 4월 11일 자 각 신문에는 "''수훈을 세우고 있는 육군 최신예 전투기''", "'''''질풍'''과 같이 적을 덮치는 우리 전투기의 늠름한 모습을 칭찬하기에 어울리는 이름''"이라는 찬사와 함께 실전 부대 소속 기체의 사진이 실렸다.[19]
4식 전투기 "질풍"은 "제국 육군의 신예 전투기"로서 국민들에게 알려졌으며, 1식 전 "할"의 선전에 대표되는 홍보 활동에 대한 육군의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질풍" 또한 각 미디어에 등장하게 되었다.
본기에 붙여진 연합군의 코드네임 "'''프랭크'''(Frank)"는 당시 필리핀에서 노획한 본기를 테스트한 미국 육군 항공군 팀의 수장인 프랭크 매코이 대령이 뛰어난 성능을 가진 적기에 자신의 이름을 헌상한 것이라고 전해진다.
4식 전투기의 최고 속도는 심사부의 이와하시 소좌가 고도 5,000 m에서 기록한 624 km/h로 널리 알려져 있다. 같은 시제기의 다른 기록으로는 고도 6,000 m에서 640 km/h도 있다. 후나바시 중위는 시제 4호기로 고도 6,120 m에서 631 km/h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러한 기록들은 모두 추력식 집합 배기관을 장착한 초기 시제기의 것이며, 양산형과 같은 추력식 단 배기관으로 개조한 기체에서는 키84-I을 시제기가 심사부에서 고도 6,000 m에서 660 km/h를 기록했다.
미군은 필리핀 전투에서 노획한 비행 제11전대 소속이었던 제1446호기(1944년 12월 제조)를 사용하여, 1946년 4월 2일부터 5월 10일까지 펜실베이니아주 미들타운 항공 병참부(Middletown Air Depot)에서 성능 테스트를 실시했다. 100 옥탄/140 등급 가솔린과 미국제 점화 플러그를 사용한 4식 전투기는 무장을 제거한 상태에서 중량 약 3397.40kg 고도 약 6096.00m에서 427mph를 기록했다. 이는 같은 고도에서 P-51D-25-NA 머스탱 및 P-47D-35-RA 썬더볼트의 최고 속도보다 각각 3 mph(5 km/h) 및 22 mph(35 km/h) 더 빨랐다.[35] 그러나 이 고도 6,096 m에서의 최고 속도가 모든 고도에서의 4식 전투기의 최고 속도이며, 그 이상에서는 속도가 떨어지기 때문에,[36] 고도 7,600 m에서 최고 속도 703 km/h를 낼 수 있는 P-51D나, 9,145 m에서 최고 속도 697 km/h를 기록하는 P-47D에 비해 반드시 우위에 있다고 할 수는 없다.
4식 전투기를 본격적으로 장비한 실전 부대는 1944년 3월 1일 편성된[38] 비행 제22전대로, 국화 문양을 부대 마크로 사용했다. 이 전대는 4식 전투기의 실전 테스트도 겸했으며, 사용 기체는 키84 증가 시제기였다. 간부 공중/지상 근무자는 주로 심사부에서 정예를 선발했고,[39] 전대장은 이 기체를 잘 알고 있던 심사 주임이자, 노몬한 사건 출신 에이스 파일럿인 이와하시 조조 소좌가 임명되었다. 제22전대는 필리핀 전투에 투입될 예정이었다.
7월 상순, 중국 항공전을 2식 전투기로 치르던 비행 제85전대가 4식 전투기로 기종 개편에 착수했다. 제22전대는 1개월 한정으로 중국 항공전에 파견되어 8월 25일에 난징에 도착, 한커우를 근거지로, 바이뤄지를 전진 비행장으로 하여 작전을 개시했다. 8월 28일에는 비행 제25전대·비행 제48전대와 함께, 내습한 미 육군 항공군 제14공군 및 중미 혼성 항공단(CACW)의 P-40과 교전했다. 다음 날 29일에는 제22전대 4식 전투기 13기와 제25전대 1식 전투기 16기가 B-24 폭격기 및 P-40, P-51과 교전했다. 30일, 제22전대 4식 전투기 10기는 귀의에서 P-51 6기와 교전하여 제76전투비행대의 P-51B 윌리엄 D. 매클레넌 중위기를 격추했다.
9월 9일, 제22전대 4식 전투기 3기가 라오허커우 비행장에 불시착한 제58폭격 항공단의 B-29를 대지 공격으로 격파하고 불태웠다.[46] 그러나 21일 시안 비행장 습격 시, 제22전대장 이와하시 소좌기는 이륙 중인 P-51 윌리엄 E. 홀 상사기를 대지 공격으로 격파했으나 피탄되어 자폭했다.
제22전대는 상태 "갑"의 4식 전투기 9기 중 6기를 제85전대에 인계하고, 필리핀 항공전에 대비하기 위해 9월 26일에 내지로 귀환했다. 제85전대는 P-51B/C를 상대로 선전했고, "코가 빨간 에이스"로 알려진 와카마쓰 고키 소좌[48]의 활약 등으로 10월에는 중국 상공의 제공권을 회복했다.
12월 18일, 한커우를 B-29를 포함한 연합군 대편대가 파상 공격하여 큰 피해를 입었다(한커우 대공습). 이처럼 4식 전투기는 중국 전선에서 실전 부대 조종사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반면, 타이완 항공전에서 기습받은 상황에서 미국 해군 F6F에 맞서 싸우다 피해를 입은 제11전대의 4식 전투기에 대한 평가는 좋지 않았다.
이후 필리핀 전투에서 제4항공군 사령관 도미나가 교지 중장은 일본 본토, 규슈, 타이완, 중국 등에서 정예 항공 부대 315기를 증원받았는데, 여기에는 다수의 4식 전투기가 포함되었다.
연합군이 레이테 섬에 상륙하고 레이테 만 해전이 시작되자, 연합군 극동 공군(FEAF) 사령관 케니 소장은 타클로반 비행장 정비를 서둘렀고,[52] 제5공군 전투기를 전개시켜 항공 지원 체제를 구축하려 했다.[53] 도미나가는 연합군의 항공 지원 체제 구축 전에 비행장을 공격하도록 명령했다. 제16비행단은 4식 전투기 11기에 타탄을 탑재시켜 출격했다.[54]
제16비행단의 공격으로 큰 손해를 입은 케니는 비행장에 레이더를 설치하여 일본군 공습을 경계했지만, 도미나가는 제4항공군 공격기로 저공 침투하여 연합군 레이더를 방해하며 공습을 반복했다.[57]
맥아더는 제4항공군의 공격에 "연합군 거점이 이토록 격렬하고, 지속적이며, 효과적인 일본군 공습에 노출된 적은 없었다"라고 평가했고,[58] 부관 찰스 윌러비 준장도 타클로반 비행장에 대한 일본군 공격으로 P-38 27기가 지상 격파되었다고 기록했다. 제4항공군은 집요한 비행장 공격과 4식 전투기 활약으로 11월 상순까지 레이테 섬 상공 제해권을 확보했다.[62]
반면, 제2비행사단장은 4식 전투기를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64] 그러나 도미나가는 4식 전투기에 기대를 걸었다. 이후 대본영은 레이테 섬에 증원 부대와 물자를 보내기로 결정했다. 10월 27일, 다호 작전이 개시되었고, 도미나가는 수송 선단 호위에 가능한 모든 전투기를 투입했다. 제1사단은 수송선 4척에 분승하여 10월 31일 레이테 섬으로 출항했다.[68] 제4항공군은 1식 전투기, 99식 쌍발 경폭격기에 '타탄'을 장비시켜 미군 비행장을 폭격, 지상 항공기를 격파했다. 1식, 3식, 4식 전투기가 교대로 선단을 호위, 11월 1일 선단은 오르모크 만에 도착하여 병력과 물자 양륙에 성공했다.[68] 이 공중전에서 비행 제52전대·비행 제200전대 4식 전투기, 비행 제33전대·비행 제26전대·비행 제20전대 1식 전투기는 미 육군 제49전투항공군 P-38과 교전했다.
필리핀 항공전 중 1945년 1월 7일, 네그로스 섬 상공에서 비행 제71전대 후쿠다 미즈노리 군조의 4식 전투기가 미군 2위 에이스 토머스 맥과이어 소령의 P-38L을 격추했다.
버마 전역에서 제50비행전대는 1944년 9월부터 4식 전투기로 기종을 변경했다. 초기에는 고장이 잦았지만, 1식 전투기를 장비한 제64비행전대와 함께 12월 31일 제15사단을 추격하는 연합군 기갑부대 공격에 성공했다.
본토 방공전에서 비행 제47전대는 "정비의 신" 카리야 대위 지휘하에 철저한 정비로 4식전 가동률을 87~100%로 유지했다.
본토 운용 시기 가동률은 제47전대가 100%, 항공창 수리기를 포함해 87%였다.
이후 오키나와 전투 (국화 작전)나 본토 방공전에도 투입되었다. 특공기 호위 임무로 출격하여 미군 F6F 헬켓, F4U 콜세어, P-47 썬더볼트 등과 격렬한 공중전을 벌였다.[82]
오키나와 전투에서는 해골 부대 마크로 유명한 제58진무대 등 4식전 편성 특공대도 출격했다.
일본 본토 방공전에서도 4식전은 활약했다. 그러나 오키나와 상실 후 본토 결전 (결호 작전) 대비 전력 온존책으로 출격이 억제되어 큰 전과를 올리지 못했다.
만주에서는 1945년 8월 9일 소련군 침공 후, 8월 12일과 15일 제104전대 4식전이 독립 비행 제25중대 2식 복좌전과 함께 소련군 기갑 부대에 타탄 공격을 가해 차량 수십 대를 파괴했다.
해군 항공 기술창에 초기 생산형 2기가 해군 연구용으로 정식 양도되었다.
4. 파생형
- '''Ki-84-a''': 시제기.
- '''Ki-84-b''': 평가 모델.
- '''Ki-84-c''': 양산 전 모델.
- '''Ki-84-I Ko''': 날개에 2 × 12.7mm 호-103 기관총과 2 × 20mm 호-5 기관포를 장착 (가장 널리 생산된 버전).
- '''Ki-84-I Otsu''': 4 × 20mm 호-5 기관포를 장착. (제한적 생산, 한 센타이를 완벽하게 갖추지 못했을 수 있음)
- '''Ki-84-I Hei''': 날개에 2 × 20mm 호-5 기관포와 2 × 30mm 호-155 기관포를 장착.
- '''Ki-84-I Tei''': Ki-84 Otsu의 야간 전투기 변형. 슈라게 무지크 구성을 위해 조종석 뒤쪽 45도 각도로 배치된 추가 호-5 20mm 기관포 1문 (300발)을 장착. 희귀한 변형, 2대 제작.
- '''Ki-84-I Ko - 만주형''': 만주국에서 만슈코쿠 히코키 세이조 KK에 의해 나카지마 라이센스로 제작됨.
- '''Ki-84-II''': 때때로 '하야테-카이'로 알려진 Ki-84-II는 후방 동체, 꼬리 부분, 날개 끝, 푸시-풀 로드 및 기타 부품과 같은 일부 듀랄루민 부품을 나무와 합판으로 교체. 이 모델은 무장에 따라 Ko, Otsu 및 Hei라는 명칭으로 생산.
- '''Ki-84-III''': Ki-87 시제기 개발이 지연된 후 Ki-84를 고고도 요격기로 전환할 계획. 호마레 엔진을 2,450마력 나카지마 Ha-44 12 Ru 공랭식 방사형 엔진으로 교체하고 터보과급기를 동체 아래에 장착. 기체는 더 큰 직경의 엔진을 지지하기 위한 엔진 마운트를 제외하고는 변경되지 않음. 이 항공기는 설계 단계를 넘어가지 못함.
- '''Ki-84 Sa Go''': 고고도 성능을 향상시키기 위해 기존의 물-메탄올 분사 시스템을 대체하는 산소 분사 시스템. 시제기는 제작되지 않음.
- '''Ki-84-N''': Ki-84의 1차 고고도 요격기 변형, 2,500마력 나카지마 Ha-219 공랭식 방사형 엔진과 날개 면적을 249.19 평방 피트로 증가. Ki-84-N 생산 모델은 ''키타이'' 'Ki-117'으로 지정. 두 항공기 모두 전쟁이 끝나기 전에 설계 단계를 벗어나지 못함.
- '''Ki-84-P''': Ki-84의 2차 고고도 요격기 변형, 2,500마력 나카지마 Ha-219 공랭식 방사형 엔진과 날개 면적을 263.4 평방 피트로 증가. 더 야심찬 프로젝트로 입증된 Ki-84-R의 추가 개발을 위해 취소.
- '''Ki-84-R''': Ki-84의 3차 고고도 요격기 변형, 2,000마력 나카지마 Ha-45-44와 기계적으로 구동되는 2단 3속 과급기를 장착. 시제기는 전쟁이 끝날 때 80% 완성.
- '''Ki-106''': Ki-106 시제기, 주로 나무로 제작. 3대 제작.
- '''Ki-113''': Ki-84 Otsu를 기반으로 하며 항공기 여러 영역에 특정 강철 부품이 있음. 이 프로젝트는 전쟁 말기에 매우 부족해진 경합금을 유지하려는 시도. 강철 시트 외피를 사용했으며 조종석 섹션, 리브 및 벌크헤드는 탄소강으로 제작.
- '''Ki-116''': 평가 모델, 미쓰비시 Ha-112-II(Ha-33-62), 1,120kW(1,500마력)을 장착. 1대 제작.
- '''Ki-117''': Ki-84N의 생산 지정.
- '''4식 전투기 1형 갑(キ84-I甲)''': 날개 내부에 호5 20mm 기관포 2문, 기수에 호103 12.7mm 기관포 2문을 장착한 대 전투기전(対戦闘機戦) 중시의 기본형. 생산된 대부분의 기체가 이 형식. 휴대 탄수는 호5가 1문당 150발, 호103은 1문당 350발.
- '''4식 전투기 1형 을(キ84-I乙)''': 갑형의 날개 포 호5는 그대로 기수 포 호103을 호5로 환장(換裝)한 대 폭격기전 중시의 무장 강화형. 제조 번호 3001 이후가 이 형으로 여겨지지만, 생산 수는 불명. 시제기는 시험 비행에서 660 km/h (6,000 m)를 기록.
- '''4식 전투기 키84-I 병(キ84-I丙)''': 1형 을의 기수 포 호5는 그대로 날개 포 호5를 호155-II 30mm 기관포로 환장한 무장 강화형. 시제만.
- '''4식 전투기 키84-I 정(キ84-I丁)''': 1형 을의 조종석 후방에 호5를 상향 포로 1문 추가한 야간 전투기형. 시제만.
- '''4식 전투기 키84-II''': 기체의 일부를 목재화한 것. 계획만.
- '''4식 전투기 키84-III''': 배기 터빈 탑재를 추가 장비한 고고도형. 계획만.
- '''4식 전투기 키84-IV''': 엔진을 고고도 성능이 뛰어난 하45-44로 환장한 고고도 전투기형. 계획만.
- '''4식 전투기 키84 사호(사호기라고도 함)''': 하45의 물 에탄올 분사를 산소 분사로 변경하여 고고도에서의 성능 향상을 꾀한 형. 상승력이 향상되어, 고도 9,000 m에서의 속도가 50 km/h 증가, 특히 가속력과 상승력도 대폭 향상. 테스트 중에 종전을 맞이함. 나카지마 비행기의 테스트 파일럿인 요시자와 준위에 따르면, "눈 깜짝할 사이에 속도계 바늘이 올라가는 것을 알았지만, 30분이나 계속하면 고장이 나서 속도가 떨어졌다. 오래 하면 안 된다"고 함. 동 장치를 탑재한 2식 복좌 전투기는 고도 10,000 m에서 출력이 30% 정도 증가, 흡입 압력으로 플러스 100 mmHg, 출력으로 150 hp 상승.
- '''4식 전투기 키106 (キ106)''': 1944년, 알루미늄 합금의 부족으로, 기체의 대부분을 목재화한 것. 무게 중심의 변화로 인해 기수가 연장되었고, 플랩은 나비형이 아닌 스플릿식으로 변경. 17%나 무게가 증가하여 상승력·속력이 저하. 또한 조립에 사용하는 카제인계 접착제에 문제가 있어, 시험 중에 주익 하면 외판이 박리·탈락하는 트러블도 발생. 다치카와 비행기에 더해 구레하 방적과, 오지 항공기에서도 시제되었으며, 총 10기가 완성.
- 오지 항공기의 에베쓰 공장(홋카이도에베쓰시)에서는 3기가 제작되었으며, 1호기는 에베쓰 비행장으로 육송되어 1945년 6월 11일에 첫 비행. 2호기는 8월 13일, 구로에 야스히코 소령에 의해 후쿠사 비행장(도쿄도)까지 800 km 이상의 장거리 비행을 견딜 수 있음을 실증. 훈련용으로의 사용도 생각했지만, 강도 부족과 구조가 양산에 적합하지 않다는 문제로 생산은 중지. 종전 후, 미국 본국에 1기가 보내져 조사. 1994년에 홋카이도 에베쓰시 사나에벳 강변의 지중에서 설계도가 발견. 키106의 주익 골격과 낙하 탱크, 모형이 홋카이도 박물관에, 주차륜 등이 에베쓰시 향토 자료관에 소장.
- 구레하 방적은 1944년 2월 10일에 항공기 메이커로서 구레하 항공기를 설립하여, 다치카와 항공기의 기술 지도를 받아 구레하 공장에서 키106을 생산. 1호기의 시험 비행은 1945년 6월 20일에 행해져, 도야마에서 다치카와까지의 비행 중에 수평 비행으로 605.6km/h를 기록. 2호기의 완성으로 양산 체제가 완성되었지만, 동시에 종전.
- 전통적인 목공 기술자가 많은 기후현 히다 지방에서도, 히다 목공 주식회사(현재의 히다 산업) 등이 참여하여 다카야마 항공 공업이 설립되어, 1944년 말에 시제기 1호기가 도쿄까지 공수.
- '''4식 전투기 키113 (キ113)''': 알루미늄 합금의 부족으로, 기체의 대부분을 강철로 한 것. 나카지마 비행기에서 시제 1호기체가 완성되어 엔진 미장착 상태로 종전을 맞이함. 역시 무게 증가와 공정 증가에 따른 생산성의 악화에 더해, 강재도 부족했기 때문에 생산의 전망이 서지 않아 실패작.
- '''4식 전투기 키116 (キ116)''': 만주 비행기에서의 전환 생산형. 발동기를 신뢰성이 높은 미쓰비시 하112-II(공칭 1,500마력)로 환장하고, 프로펠러도 3엽. 또한 무게 중심 조정을 위해, 전장이 20 cm 길어짐. 익면 하중이 정식 기보다 25 kg 정도 감소한 것도 있어, 속도가 다소 저하된 반면, 비행 특성은 향상. 엔진 등으로 무게가 500 kg 정도 감소했으며, 이는 환장에 의해 감소한 엔진 출력 약 300 hp분을 충분히 보충하고 남는 것. 특히 익면 하중은 키84의 185 kg/m2에 대해 160 kg/m2이 되었기 때문에, 선회 성능이나 이착륙 성능은 오히려 향상된 것으로 추정. 시험 비행의 결과는 양호했지만, 각종 비행 특성과 엄밀한 성능 측정을 직전, 1945년 8월 9일 소련 대일 참전에 조우하여, 관계자의 손에 의해 기체·설계도 모두 스스로 처분.
- '''4식 전투기 키117 (キ117)''': 엔진을 대마력의 하44-13형(이승 2,400마력)으로 환장한 성능 향상형. 주익을 1.5 m2 넓혀 고고도 성능 향상을 꾀함. 설계 중에 종전. '''키84-N'''이라고도 칭함.
5. 제원 (Ki-84-I 갑)
항목 | 값 |
---|---|
전장 | 9.92m |
전폭 | 11.238m |
전고 | 3.385m |
익면적 | 21m2 |
엔진 | 나카지마 Ha-45-21 공랭식 18기통 성형 엔진 (1,522kW, 2,000마력) |
중량 | 3,601.5kg |
최대속도 | 687km/h (미국 테스트 결과) |
무장 | 기수 - 12.7mm 기관총 2정, 주익 - 20mm 기관포 2문 |
항속거리 | 1,695k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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